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보잉 787 드림라이너 (문단 편집) == 개발사 == 보잉은 1990년대에 원래 787 드림라이너가 아닌, 747-400과 767의 판매량이 적어지자 이를 대체할 기종을 개발할 계획이었다. 보잉은 747-400의 동체를 늘린 747-500X, 747-600X를 고려했지만 항공사들의 관심 부족 탓에 계획을 접었다.[* 결국 747-400의 동체 연장형은 747-8로 실현됐다.] 보잉은 소닉 크루저라는 이름을 가진 기존의 상업용 항공기보다 더욱 빠른 속도인 마하 0.98로 음속에 가까운 속도를 비행할 수 있지만, 767과 비슷한 연료 소모를 가진 기종의 개발도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면서 항공여객 시장이 위축되고, 유가가 치솟으면서 항공사들이 효율성을 중시하기 시작하자 보잉은 효율성을 중시한 새로운 광동체 여객기를 개발하기로 결정한다. 보잉은 진행 중이던 소닉 크루저 개발 프로젝트를 2002년 12월에 공식 취소했고, 2003년에 소닉 크루저에 적용하던 기술들을 더욱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속도가 아닌 효율성을 증대시킨 7E7 기종을 개발하기로 한다. 보잉은 당시 에어버스가 개발하고 있던 A380과는 달리 허브 앤 스포크가 아닌 포인트 투 포인트 시장에 공략할 수 있는 기종을 개발하고자 했고, 2004년 4월 26일에 보잉은 첫 고객인 전일본공수가 50대의 7E7을 주문하면서 787 드림라이너를 공식적으로 런칭하게 되었다. 7E7은 런칭 전, 별명 공모전을 진행했는데, 7E7의 별명이 될 뻔한 것으로는 스트라토 클라이머, 글로벌 크루저, e라이너 등이 있었으며, 이 중 드림라이너가 가장 많은 투표를 받으면서 드림라이너가 787의 공식적인 별명이 된 것이다. 787 드림라이너의 런칭 당시에는 국내선을 공략한 787-3, 그리고 787-8이 첫 형식들이었다. 보잉은 787 드림라이너의 무게를 줄이고 효율성을 늘리기 위해 동체를 기존과 같이 알루미늄을 이어 붙이는 것이 아닌 탄소 섬유를 사용하여 통채로 동체를 조립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보잉은 이에 그치지 않고, 날개 등의 다른 주요 부품도 탄소 섬유를 사용해 제작했고, 보잉 767에 비해 약 20% 높은 효율성을 가지도록 설계했다. 보잉은 787 드림라이너의 엔진으로 제너럴 일렉트릭의 GEnx와 롤스로이스의 Trent 1000을 채택하였다. 이 엔진들은 보잉 767에 적용되던 엔진에 비해 25%가 넘게 개선된 효율성을 보여주는 엔진들이다. 이 중 롤스로이스의 Trent 1000 엔진을 사용한 787 드림라이너가 787 드림라이너의 세 형식 모두에서 첫 비행을 진행했으나, 엔진 판매량에서는 제너럴 일렉트릭이 월등하게 앞서고 있다. 보잉은 2003년에 787 드림라이너의 생산을 기존의 광동체 상업용 항공기들이 생산되던 보잉의 미국 워싱턴 주 에버렛 공장에서 진행하겠다고 밝혔으며, 보잉은 기존의 항공기들의 부품들이 에버렛 공장에서 생산되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보잉이 다른 회사들이 생산한 787 드림라이너의 부품을 받아서 에버렛, 찰스턴에서 최종 조립을 진행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대표적으로 미쓰비시중공업, 스바루, KAI, 대한항공, 카와사키, 스피릿 에어로시스템즈, 레오나르도 등의 업체들이 787 드림라이너의 부품을 공급하며 외주사에서 제작한 부품은 787 전체 부품의 75%에 이른다[[https://m.blog.naver.com/dreamline20/130025683353|#]]. 보잉은 이러한 세계 각지에서 오는 부품을 수송하기 위해 747-400 여객기를 기반으로 특수 화물 수송기인 747-400LCF 드림리프터를 제작하였으며, 이 747-400LCF들은 총 4대가 제작되어 787 드림라이너의 부품을 수송하고 있다. 747-400LCF 드림리프터가 수송하고 있는 787 드림라이너의 부품으로는 동체, 날개, 선방 동체, 문 등이 있다. 2007월 5월에는 첫 787 드림라이너인 N787BA의 최종 조립이 에버렛 공장에서 진행되기 시작했으며, 2007년 7월 8일에 787이라는 숫자를 맞춰서 787-8 드림라이너 N787BA의 롤아웃을 진행하였다. 787-8 드림라이너의 첫 비행은 2007년에 이루어질 예정이었으나, 여러 문제로 인한 지연으로 인해 787 드림라이너의 첫 비행은 2009년까지 미뤄지게 되었다. 6번이 넘는 787 드림라이너의 첫 비행 일자 연기로 인해 일부 고객들은 보잉을 상대로 보상금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2009년 여름, 787 드림라이너는 보잉이 2009 파리 에어쇼에서 787 드림라이너의 첫 비행을 몇 주 안에 진행할 것이라고 하면서 드디어 첫 비행을 할 것으로 보였지만, 또다시 문제가 발생하여 연기되었고, 결국 2009년 말에 첫 비행, 2010년에 첫 인도를 진행하는 것까지로 연기되었다. 보잉은 787 드림라이너의 첫 비행을 2009년 12월에 진행하기로 하면서, 2009년 12월 12일에 787 드림라이너는 고속 택싱 테스트를 진행하였고, 2009년 12월 15일, 마침내 787-8 드림라이너 1호기 N787BA가 에버렛에서 이륙하면서 보잉 787 드림라이너의 시험 비행이 시작되었다. 보잉의 787-8 드림라이너는 총 6대의 기체를 동원하여 시험 비행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787 드림라이너의 첫 비행 후에도 787 드림라이너의 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2010년 8월 2일에는 롤스로이스의 Trent 1000 엔진 테스트 시설에서 Trent 1000이 폭발해 버렸고, 롤스로이스가 사고를 치는 바람에 787 드림라이너의 인도 시기가 꼬여 버리게 되면서 2011년 초로 또다시 연기되게 된다. 시험 비행 중에도 여러 문제가 발견됐는데, 균열이 발생하고, 기내에서 연기가 발생하는 등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험 비행 중 발생한 또다른 문제로 인해 2011년 초가 아닌 3분기로 또다시 787 드림라이너의 인도가 연기되었다. 2011년 8월, 마침내 롤스로이스 Trent 1000을 사용하는 787 드림라이너가 먼저 인증되었으며, 787 드림라이너를 2011년 8월 26일에 보잉의 에버렛 공장에서 FAA와 EASA가 기념 행사와 함께 공식적으로 인증하였다. 이후 2011년 9월 25일 최초 발주 고객인 전일본공수에게 첫 787-8 드림라이너가 인도되었고, 2011년 10월 26일에 전일본공수가 나리타에서 홍콩으로 향하는 항공편을 787-8 드림라이너로 운항하면서 787 드림라이너의 상업 운항이 시작되었다. 이후 787-3 드림라이너는 저조한 판매량으로 인해 취소되었으며, 787-9 드림라이너의 인도는 2014년으로 연기됐다. 이후 787 드림라이너 판매가 성공을 거두면서 보잉의 787 드림라이너 프로그램은 성공적인 광동체 상업용 항공기 중 하나가 되었다. 보잉 787의 개발은 보잉의 역사에서 나쁜 의미로 하나의 획을 그은 사건이기도 하다. 기존의 항공기 개발에서는 제작사가 동체와 날개를 직접 제작하고 다른 부품들은 외주사에게 맡겨서 생산한 후 제작사의 철저한 검증을 거쳐 인도 받은 후 조립했지만 787의 경우 설계에서 생산, 검증까지 외주사에게 위임하는 방식을 택했다. 에어버스의 항공기 제작 방식처럼 동체의 전면부, 중간, 후면부, 날개, 각종 부품 등등을 서로 다른 나라에 있는 서로 다른 업체에서 생산한 후 조립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원래 목표와는 달리 외주사가 제작한 부품의 품질에 문제가 생기면서 일정이 꼬이기 시작한다. [[https://ysb.yonsei.ac.kr/board.asp?act=view&mid=m06%5F02&cmid=m06%5F02&cid=0&eid=&bgn=&bid=8&sOpt=&pact=&mType=&mCourse=&mKisu=&tabidx=&hSel=&page=1&keyword=&uid=&idx=5659|#]] [[https://m.blog.naver.com/dreamline20/130025683353|#]] 보잉에서도 "기술의 일부가 필요한 만큼 성숙한 것이 아니었다"며 "부품과 기술의 조달에서 고객 납품에 이르기 까지 전세계 공급망에 대한 생각이 부족했다"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https://m.khan.co.kr/economy/industry-trade/article/201101241135451#c2b|#]] 애초에 보잉은 787 개발에 100억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지만 3년 정도 인도가 지연되면서 개발 비용이 400억달러로 30조원 이상 초과되게 된다. 이러한 과도한 개발비 때문에 2015년 기준으로 1대를 팔 때마다 보잉은 2500만달러의 적자를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https://adino.tistory.com/607|#]] 이러한 어마어마한 손실 때문에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경험 많은 고액연봉자를 회사에서 내보냈으며 때문에 개발과정도 이전에 비해 훨씬 빨리, 그것도 대충대충 이루어지게 되었다.[* 737 MAX의 개발 과정에서도 인건비 절감을 위해 최저임금보다 약간 더 높은 수준의 임금으로 인도 출신 프로그래머들을 고용해서 MCAS를 설계하다가 사달이 났다는 분석이 있다. [[https://ko.topwar.ru/159636-prichinoj-katastrof-boeing-737-mogli-stat-deshevye-programmisty-iz-indii.html|#]]] 이렇게 해서 만든 비행기가 [[737 MAX]]였고 결과는 모두 알고 있듯이 두 번의 사고로 인해 2년 넘게 운항이 중지되었다. 미공군과 의회까지 난장판으로 만든 [[KC-46]]의 개발과정도 이와 유사하게 진행되었으며 미 공군의 고등훈련기 신규 도입 계획([[T-X 프로그램]])에서 [[사브]]와 함께 발주하여 채택된 [[T-7]], 시험비행에 성공했지만 인도 시기가 2025년으로 2년 정도 연기된 [[777X]]도 유사한 과정을 따르고 있다. 심지어 787의 생산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노스찰스턴으로 몰아 버렸는데 이는 원가절감 때문이다. 즉, 워싱턴주 에버렛과 랜튼 공장이 강력한 노조 때문에 인건비 삭감이 어려운 반면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노조 설립이 불법이라서 쉽게 임금을 삭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http://www.dspdaily.com/m/page/view.php?no=16880|#]][* 노스찰스턴 공장 설립 이후 10년 동안 워낙 다양한 사고가 많이 발생했는데 때문에 노스찰스턴 공장에서 만든 787을 인수하지 않겠다는 항공사가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었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22/2019042201702.html|#]] 물론 보잉은 이러한 보도를 부인했다.] 아래 결함 파트에 서술되어 있지만 2022년 현재까지도 보잉은 787의 품질 결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2010년대부터 시작된 보잉의 잇따른 악재들의 배경에는 787 개발과정에서 발생한 어마어마한 손실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